방문을 환영합니다.
전영철2013.01.09 16:05
....................허현님의 답글에 답한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가저오는 하늘의 소리,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 먼 미대륙의 어느 골짜기로부터
기쁜 소식을 가저오는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들리는군요.

아나뱁티스트의 문턱이 닳아지라고
인적 없는 녹슨 대문을 두드렸던 그동안의 피로가
님의 응답으로 눈녹듯이 사그러짐을 느낍니다.

정리되지 못한 긴 사설을
몇 줄 안되는 글로
님은 명쾌하게 정리해주시는구려.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의 한파를 견디고
예까지 달려온 무거운 발걸음
그것은 오로지 님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

님의 말씀으로
메마른 잎들이 촉촉이 젖어
윤기와 새로운 활력이 솟아납니다.

...........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의 운동)을 따르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이며
그 처음 예수 운동을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중요하다'는 님의 말에 공감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의지하며 몸담아왔던 가장 소중한 전통을 되돌아 보며
행여 떨어질까봐 꼭 붙들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마워해도 부족한 데도,
오히려 그것을 경계하고 애써 허물며
그것도 모자라 대들보를 들어내고 주춧돌까지 파내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대를 제거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배타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소명으로 알고 헌신하고 있는 상반된 일을 통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상보적인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다만 하나님 한 분을 제외하고는
궁극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점에서 복음서나 바울서신도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서나 바울서신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아가서 비기독교권에서 쓰여진 것들만이 유의미한 것은 더욱 아니겠지요.
탐구자들이 해낸 성과란, ‘복음서나 바울서신까지도 절대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일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동안 복음서나 바울서신이 너무 절대화되어왔다!’
‘예수조차도 지나치게 절대화되어왔다!’는 것을 고발하고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진리보다 기독교의 교리가 우선한다고 믿고 고집하는 대신,
진리 앞에, 어느 누구보다 먼저 무릎꿇고 고개숙일 줄 아는 자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성전안 지성소에 모셔진 절대화된 수많은 우상들 때문에
정작 모셔야 할 하나님의 존전은 텅 비어 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화석화된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복음서나 바울서신이 믿을만한 것이 못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비기독교권에서 쓰여진 것들만이 유의미한 자료들이 아닙니다.
기독교권 내외를 불문하고 진리탐구에 헌신한 모든 자료들은 중요하며 유의미합니다.

그중에서 복음서나 바울서신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 이외의 것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는 일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제자리에 모시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는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막10:18; 눅18:19)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새기고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24시간 불을 밝혀놓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결코 잠들지 않는 파수꾼이어야 한다고 말해도 될까요.

예수를 주체적으로 하나님처럼 믿고 따르는 믿음을 가지되
결코 공개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양식을 가진 자,
그것은 밝아오는 새해에 지녀야 할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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