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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내가 아나뱁티스트를 만난 해요 알기 시작한 해였습니다.
그래서 차근차근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습니다.
소박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가까스로 대화의 문을 여는 데까지는 이르렀으나
대화다운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함께 나누려 했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일단 접어둡니다.
그대신,그중에서 정작 하고싶었던 이야기,
오랜 대화의 시간이 지난 뒤, 마지막무렵에 나누려던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지금 하겠습니다.

..............

나는 도처에서 아나뱁티스트가
기독교의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의문을 함께 지녀왔습니다.

감동이라 함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처음 신앙을 회복하고자 하는 아나뱁티스트의 순수한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의문이라 함은 처음 아나뱁티스트가 택한 대상,
아나뱁티스트가 가장 원초적인 것으로 알고 선택한 모델 때문이었습니다.

왜 아나뱁티스트는 예수와 그 제자들이 다 떠난 뒤의 모델,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를 하나님으로 예배한 '종교화'된 2차적 모델을 예수운동의 원형으로 삼았을까?
왜 아나뱁티스트는 곧바로 예수에 의해 이끌어지는 예수생존시의 예수운동을 모델로 삼지 않은 것일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따르는 일과 예수를 믿는 일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까닭인즉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선배로부터 전해받은 가르침에 따르기 마련입니다.
요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기독교의 전통적 가르침, 그 대단한 권위, 신성불가침의 신조의 위력입니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것은 초대교회라는 말 속에 가려져 있는 진실, 일종의 혼동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 그리스도인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예수와 하나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떠나, 그 주위를 맴돌고 있으며 그런 사실조차 모르기 일수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며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 자신의 생각, 예수자신이 보여준 믿음은 제쳐두고 권위있는 사도나 제자들의 말을 따르는 일일까요.
아니면, 예수의 생각, 믿음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믿으며 따르는 일일까요,

아무리 위대한 예수의 제자, 위대한 예수의 사도의 생각, 가르침,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대체로 엇비슷하기는 할지라도 예수자신의 생각, 가르침, 믿음과는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아니, 때에 따라서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사람들은 예수를 전하는 사람,
가령 그리스도의 사도를 자칭하는 바울의 생각과 신앙을 따르면서
예수의 생각, 예수의 신앙으로 혼동하며 예수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천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리잡아온, 그 수많은 바울 서신의 어느 쪽이든 펼쳐서 읽어보십시오.
바울만큼 예수를 사모하며 예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고 있는 분, 따르고 있는 분은 예수가 아닙니다.

그가 부르고 있는 이름은 그리스도, 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와는 전혀 다른 신격화된 새로운 존재입니다.
하나의 예수는 바울에 이르면 예수와 그리스도, 또는 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확실하게 2분화됩니다.

바울이 의지하고 있는 분은 예수가 아닙니다.
갈릴리에서 인간미 물씬 풍기면서 농어민들과 어울리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많은 편지 내용의 어느 곳에서도 갈릴리 예수의 말이나 행적은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바울의 출발점은 갈릴리의 예수가 아니라, 환상속에 만난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추앙되어 온 바울 편지를 밑받치고 있는 유일한 것이 다메석의 환상이란 말입니다.
바울이 세운 거대하고 웅장한 성곽, 2천년동안 기독교의 주춧돌과 대들보노릇을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가 없습니다. 예수가 없는 기독교, 그것은 결코 오늘날에 이르러 처음으로 일어난 현상이 아닙니다.
2천년 전, 오로지 바울의 환상, 바울의 꿈 위에 기독교가 새로 생겨날 때분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현상입니다.
기독교란 이름 아래, 예수는 사라지고, 그대신 예수그리스도라는 오로지 영성만 강조하는 신령이 태어난 것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기독교의 고유한 교리로 주장되어 온 것들의 거의 모두가
당시 중동지역에 널리 유포되고 있었던 타종교의 교리들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믿고싶지 않은 일이지만 학자들은 속속 이런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이같은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 한다면
사람들이 알고 있고 , 그리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의심없이 믿어왔던 기독교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재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명확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새로 창조된 우상에게 절하는 신앙체계속에 실종된 예수를 다시 찾아내는 일일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속에서 우상으로 화석화된 예수그리스도 대신, 살아 숨쉬는 예수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체제종교에서 삶으로, 기독교가 아니라 예수운동으로, 일대 격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아나뱁티스트도 예외는 아닌듯 합니다만)은
유감스럽게도 원래의 예수의 생각, 예수의 믿음을 가지려고 끝까지 철저하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훔모하며 갖게 된 위대한 제자나 사도들의 제2차적 생각이나 믿음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여러분에게 묻고 있습니다.
처음교회를 사모하며 따르고자 하는 여러분의 숭고한 열정은
그 역사 속에 방금 이야기한 이같은 문제를 고민하며 잠못 이루던 밤들이 있었던가를...

..........

2천년 기독교사를 돌아보면,
아니, 성경을, 그중에서도 복음서만 돌아보더라도
그 안에는 마치 큰 저수지처럼 서로 상반하는 다양한 생각의 갈래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기독교의 역사는
그중의 어떤 것은 정통이며
그밖의 것은 이단이라 제거하는 인위적인 교리통일작업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예수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 네 개의 복음서는 그 작성 연대가 각각 다른데
시간이 경과할수록 마가와 같은 처음 복음서은 어렸을 때의 기사조차 보이지 않음에 비하여
뒤로 갈수록 처음에는 없었던 내용들이 추가되어, 나중에는 예수의 인격은 신격화하기에 이릅니다.

예컨대 복음서중에 가장 늦게 나온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수탄생 이전의 엄청난 우주적 탄생설화가 덧붙여져
전개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으며
그 빛이 세상에 오셔서 비추셨으나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이같은 서술은 다름 아닌 예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간단히 줄여 말하면 예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이야기입니다.(요1:1-11)
그와같은 생각은 바로 예수자신의 생각이라고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요한은 마치 예수 자신이 스스로를 영원한 분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복음속에서 요한은 예수에 관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요5:19)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아가서 하나님잉과 동시에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지하며 믿고 따르는 자라는 상반된 주장을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긴 이야기는 줄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에수중심'도 중심 나름입니다.

흔히 '예수중심'의 공동체로 알고 있는 초대교회는
예수중심이라기보다는 초대교회사람들 내지 그 지도자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그들의 영적 지도자로, 하나님으로 예배드리는 '종교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예수를 본받아, 예수가 믿는 하나님을 믿는 일을 중지하고
그대신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깨닫고 따르는 기쁨 대신, 예수에게 엎디어 절하는 신앙의 열정으로 변한 것이지요.

오직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몸과 생명을 돌보지 않는 예수의 동역자가 되는 대신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하고는 삼척동자도 먼저 알아보는 허망한 짓이 21세기 갱명천지에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신격화라는 이러한 생각의 변화 내지 신앙은
먼 훗날, 곧, 4세기의 콘스탄티누스황제주제하의 니케아회의에 의해서 확정되기에 앞서,
예수께서 세상을 뜨신 후, 수십년이 지났을 때 만들어진 복음서 안에 이처럼 이미 들어와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다 맞다거나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생각이 예수의 생각과 일치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어쨋던 예수의 시대와 그 뒤의 시대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어찌하여 아나뱁티스트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열정을
'예수 생존시의 예수운동'에서 찾지 못하고, 예수에 의해 직접 이끌어진 예수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바을 등에 의해, 이미 '종교화된 초대교회'를 그 모델로 삼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처음 아나뱁티스트들에게는 루터를 비롯한 여타의 종교개혁과 마찬가지로
그 이상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적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처음사람들처럼 위대하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지 못한 일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시대에 태어난 더욱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내 물음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처음 아나뱁티스트가 채택한 믿음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여깁니까?'
아니면, '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하고 남겨놓은 일을 마저 수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십니까?'

내가 고민하며 계속 고삐를 늦추지 못하고 있는 대목도 바로 이점입니다.
결국, 기독교는 아무리 개혁해도 기성의 종교의 틀안에서만 움직여야 되는 것인가,
예수운동,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기성종교의 틀까지 넘어서는, 더욱 새로운 것인가?

그리하여 기독교 내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타종교들과도 얽혀있는 근본적인 갈등의 요인들,
나아가서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새로 다가오는 새시대의 문을 열며
인도할 수 있는 비전을 아나뱁티스트는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런 물음을 기탄없이 드릴 수 있는 까닭은
아납뱁티스트는 적어도 무조건 반대하거나 거부하려 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면서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전통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아나뱁티스트는
아무리 시대에 앞서서 신앙의 첨단을 살아온 위대한 전통을 가졌다하더라도
기성의 업적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온전한 진실을 향해 전진하는 이들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밝아오는 2013년은 이같은 물음에 대하여 무엇인가 대답할 수 있는,
세계 도처에서 힘있게 동트고 있는 새로운 빛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해가 되길 소망하며
주안에서 회원 모두가 새롤 태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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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영철 2013.01.09 16:05
    즉각적인 응답은 이제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깊이 심겨진 씨앗일수록
    그 싹이 돋아나는 데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것을 배웠습니다.
    텃밭 앞에 주저 앉아, 이제나 저제나 언제 씨앗이 그 모습을 보일까 애태우다가
    씨앗을 땅속에서 파내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생명은 반드시 그것이 숙성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생명은 시간과 함께 자란다는 것을,
    그래서 생명은 믿음속에, 기다리는 기쁨을 안겨준다는 것을 다시 새겨봅니다.
  • ?
    전영철 2013.01.09 16:05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하는 일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아직 확실하지 않은 설익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는 것은 여러분에 대한 신뢰,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져온 깊은 경험과 지헤에 비추어 볼 때
    이같은 내 이야기에 대해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실로 궁금한 사항입니다.

    여러분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옭은 것이라면
    이에 따라 내 생각도 당연히 수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긍정이든 부정적이든, 내 생각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 ?
    전영철 2013.01.09 16:05
    신앙을 밑뿌리로부터 뒤흔들 수 있는 이같은 나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삶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오랜 시간 뒤에,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찍 나의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근본적인 도전입니다.
    예수 안에는, 바울과 그 후계자들이 발전시킨 기독교라는 종교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는, 기독교라는 종교만으로 다 채울 수 없는 또 다른 가능성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에 큰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는 기독교에 크게 감사하면서
    그 기독교마저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적 영성과 사회적 변혁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삶의 길을,
    이것이 내가 몸담고 있는 <새기운>에서 <영성과 혁명이 하나되는 운동>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오늘의 세계에 빛을 던질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다시 처음교회이전의 예수에게서 찾을 수는 없을까요?
  • ?
    전영철 2013.01.09 16:05
    이 글은 2013년의 새해를 맞으면서 드리는
    아니, 어쩌면 내가 아나뱁티스트를 만나서 드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의 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만날지, 이것으로 끊어질지 모르는
    아나벱티스트 형제자매님들 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
    전영철 2013.01.09 16:05
    관련 최근 추천 도서:
    *Christianity After Religion: The End of Church and the Birth of a New Spiritual Awakening / Diana Butler Bass /
    February 14, 2012 / HarperOne.
    *예수를 교회로부터 구출하라 / 로빈 마이어스 지음 / 긴준우 옮김 / 2012년 12월 20일 / 한국기독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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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철 2013.01.09 16:05
    이보다 먼저 충분히 여러 이야기를 나눈 뒤에라야
    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순서를 내가 먼저 지키지 못했군요.

    그러니 역겨웁거나 적어도 부담스런 이야기로 들리신다면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카페지기의 직권으로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나는 이것을 확정된 주장으로서라기보다는
    이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응답을 들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 ?
    허현 2013.01.09 16:05
    글 감사합니다... 처음 예수(의 운동)을 따르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이겠지요... 그 처음 예수 운동을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중요할텐데요... 거기서 다른 입장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역사나 전통이 주는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실제로 저희가 신앙을 갖게 된 길을 따라가 보면 사실 역사와 전통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이아나 버틀러 바스나 로빈 마이어스의 책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결국 복음서나 바울의 서신들 마저도 이미 예수를 종교화 시킨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신뢰할 만한 자료들은 비기독교권에서 쓰여진 것들만이 유의미한 자료들이 되지 않을까요...? 정성드려 쓰신 글에 긴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단 답변을 짧게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 짧은 생각을 먼저 올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주신 질문을 내면에 묵히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 ?
    전영철 2013.01.09 16:05
    ....................허현님의 답글에 답한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가저오는 하늘의 소리,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 먼 미대륙의 어느 골짜기로부터
    기쁜 소식을 가저오는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들리는군요.

    아나뱁티스트의 문턱이 닳아지라고
    인적 없는 녹슨 대문을 두드렸던 그동안의 피로가
    님의 응답으로 눈녹듯이 사그러짐을 느낍니다.

    정리되지 못한 긴 사설을
    몇 줄 안되는 글로
    님은 명쾌하게 정리해주시는구려.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의 한파를 견디고
    예까지 달려온 무거운 발걸음
    그것은 오로지 님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

    님의 말씀으로
    메마른 잎들이 촉촉이 젖어
    윤기와 새로운 활력이 솟아납니다.

    ...........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의 운동)을 따르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이며
    그 처음 예수 운동을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중요하다'는 님의 말에 공감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의지하며 몸담아왔던 가장 소중한 전통을 되돌아 보며
    행여 떨어질까봐 꼭 붙들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마워해도 부족한 데도,
    오히려 그것을 경계하고 애써 허물며
    그것도 모자라 대들보를 들어내고 주춧돌까지 파내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대를 제거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배타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소명으로 알고 헌신하고 있는 상반된 일을 통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상보적인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다만 하나님 한 분을 제외하고는
    궁극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점에서 복음서나 바울서신도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서나 바울서신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아가서 비기독교권에서 쓰여진 것들만이 유의미한 것은 더욱 아니겠지요.
    탐구자들이 해낸 성과란, ‘복음서나 바울서신까지도 절대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일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동안 복음서나 바울서신이 너무 절대화되어왔다!’
    ‘예수조차도 지나치게 절대화되어왔다!’는 것을 고발하고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진리보다 기독교의 교리가 우선한다고 믿고 고집하는 대신,
    진리 앞에, 어느 누구보다 먼저 무릎꿇고 고개숙일 줄 아는 자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성전안 지성소에 모셔진 절대화된 수많은 우상들 때문에
    정작 모셔야 할 하나님의 존전은 텅 비어 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화석화된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복음서나 바울서신이 믿을만한 것이 못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비기독교권에서 쓰여진 것들만이 유의미한 자료들이 아닙니다.
    기독교권 내외를 불문하고 진리탐구에 헌신한 모든 자료들은 중요하며 유의미합니다.

    그중에서 복음서나 바울서신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 이외의 것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는 일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제자리에 모시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는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막10:18; 눅18:19)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새기고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24시간 불을 밝혀놓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결코 잠들지 않는 파수꾼이어야 한다고 말해도 될까요.

    예수를 주체적으로 하나님처럼 믿고 따르는 믿음을 가지되
    결코 공개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양식을 가진 자,
    그것은 밝아오는 새해에 지녀야 할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 ?
    허현 2013.01.09 16:05
    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이외의 것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는 일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제자리에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겠지요... 제 신앙에서 성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도구입니다... 결코 하나님과 대치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서는 다른 자료들과는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믿습니다... 전통과 역사의 시험을 지나 온 신앙공동체의 고백이기 때문이지요... 그 성서를 통해 제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누구신가를 구체적으로 알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그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완전한 계시요 그러한 완전한 계시가 가능한 것은 그 분이 하나님일 때 가능하다는 것이 계시의 법칙이라고 봅니다...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공개적으로 부르는 것과 남에게 강요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
    전영철 2013.01.09 16:05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어있는 분을
    또 한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대화요, 불손하고 교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요, 온전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한쪽이 주장하면
    '옳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라고 또 한 사람은 대꾸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분, 자신이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분은 결코 다른 분이 될 수 없는거죠.

    나는 언제부턴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상대편이 지니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그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나도 소중히 여기는 일'이라고.

    허현님,
    이제까지 저의 무례한 이야기에 성실한 대답으로 대화에 응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도 허현님과의 대화는 여기까지이며, 저의 무례함에 분노하지 않고 대해주신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신앙고백에 시비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 데도 없습니다.
    나는 끝까지 충실하신 님의 신앙고백에 경의를 표하고 존중하며 감동을 전합니다.
    불충분한대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끝까지 베풀어주신 님의 관용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
    허현 2013.01.09 16:05
    부족한 사람과 말씀 나눠주신 것에 제가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지요... 어떻게 하다보니 제 신앙고백이 되어버려 대화가 진전되기에는 어려움이 생겼네요... 어째 튼 거기까지가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신앙의 연계점인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다시 감사드립니다...
  • ?
    전영철 2013.01.09 16:05
    세상에는 아름답고 존경스런 일이 많지만
    신앙 문제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다른 생각,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도 드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다분히 감성적으로, 때로는 경험적으로 자리잡게 된 신앙이
    나아가서 지성에 의해서까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신앙의 길을 함께 가는 동료들일겁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앙이 온전하다고 자랑할 수 없고, 또 주장하려 하지 않는 도상의 나그네들입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변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그 눈부신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에 불변하는 중심이 버티며 감싸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변화와 불변하는 중심, 우리는 그중의 어느 하나가 없어도 당장 숨막혀 질식해버리겠지요.

    급변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는 일,
    중심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중심을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드러내는 일
    나만의 중심이 아니라 보다 많은 존재들, 모든 존재를 함께 아우르고 있는 우주의 중심!

    실재하는 그 중심을 내 의식이 따라잡고 깨닫기 위하여!
    나만의 작은 중심에서 벗어나 보다 넓고 큰 우주의 중심에 이르기 위하여!
    지상의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숨쉴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세워진 벽보다 더욱 완고한 자신의 벽을 넘어서
    손에 손잡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아니, 나부터 겹겹히 쌓인 나의 벽부터 허물어가는 새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사이를 가로 막으며 무수한 피바람을 몰고 오고 있는 장벽은
    아랍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자지구의 안보의 장벽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시적인 장벽을 넘어, 서로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종교상 신앙고백의 차이에 관계가 있습니다.

    내가 만난 아랍인들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 그들의 하나님과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같다 하였습니다.
    무슬림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사탄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섬기는 이상으로 마호멧을 높이 섬기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마호멧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엄격하게 신의 사도라 말합니다.
    그들의 경전 쿠란은 예수를 무시하기는커녕 마호멧과 같은 서열로 존경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아나벱티스트가 부단히 추구해 마지 않는 고귀한 <평화>의 노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 우리가 믿으며 찬양하고 있는 하나님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며,
    무엇보다도 이 중심의 반경, 그 깊이, 그 높이를 새롭게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
    전영철 2013.01.09 16:05
    하나님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인들만의 하나님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가.
    예수 또한 기독교의 딱지가 붙은 기독교인들만의 전매품인가.

    하나님은 크리스찬인가요?
    예수님은 크리스찬인가요?
    여타의 사람들에겐 아무 관계도 업는?

    이제는 하나님을, 또한 예수를
    기독교인들만의 궁전 안에, 소위 그들이 말하는 지성소 안에 더 이상 묶어두지 않고
    그에게 관심을 갖는 모든 이에게, 만인의 품에 돌려드려야 할 때가 이미 지나고도 남은 것이 아닐까.

    2013년은 이제까지 우리가 섬겨왔던 하나님에게 충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다시,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마치 이제까지 몰랐던,처음 뵙는 하나님처럼, 하나님을 새로 만나는 경이로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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