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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baptism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묵상한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의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첨삭할 부분을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은총이..


 


1. Anabaptism?: 


 아나뱁티즘은 또 침례/세례를 준다는 뜻입니다.


 


2. 왜 또 침례를 주는가?


 다시 침례를 베풀었던 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그 속에는 종교개혁을 완성시키려는 뜨거운 열망이 녹아 있었습니다.


재침례교인들은 당시의 루터, 깔뱅, 쯔빙글리의 개혁이 미진하며,


타협적인 개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프로테스탄트 내부에도 늘 존재해 있었습니다.


예컨대, 청교도 운동이나 침례교회 운동이 그 예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나뱁티스트와 프로테스탄트 사이에는 상당한 교집합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재침례교인과 개신교인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개혁의 철저성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어떠한 권위나 제도, 전통 등에도 얽매이지 않고 가장 온전한 모습으로,


가장 자유롭게 개혁을 이루어 내자는 것,


이것이 재침례교인들의 한결같은 열망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Anabaptism의 여러 가지 별명 중에서, radical Reformation,


곧 급진 종교 개혁이라는 명칭은 그들의 정체성의 한 측면을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침례교인들의 개혁은 단순히 개혁을 위한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뚜렷한 목표와 방향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향했던 개혁은,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실천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초대교회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 성서(특히 신약성서, 그 중에서도 복음서),


그리고 초대교회의 전통으로 온전히 돌아가려는 움직임,


이것이 바로 Anabaptism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열망을 모두 담아낸 것이 바로


다시 침례 주는 행위 안에 몽땅 녹아 들어 있는 것입니다.


 


3. 재침례의 의미


 1) 참 신앙의 표지:


 재침례는 참된 신앙의 표지였습니다.


당시 시행되었던 유아세례는 참된 신앙을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편의 신앙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의 주입을 더욱 중시여겼습니다.


또 종교개혁가들도, 특히 깔뱅은 참된 신앙이란 인간의 반응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침례교인들이 보기에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인격적 반응이 빠져버린 절반의 신앙이었죠.


믿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반응과 떨어질 수 없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재침례교인들은 신앙에서 인간의 자발적인 반응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발적 반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온전한 의식으로, 올바른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온전한 이해력이 필요한고로 재침례교인들은 통상적인 경우 성인들의 침례를 강조합니다.


(지각과 이해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나 장애인들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은총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았으면,


반드시 이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재침례 의식 속에 들어 있습니다.



재침례는 이런 점에서 '자유'에 대한 강조를 나타냅니다.


 


신앙은 강제될 수 없다,


자고로 참 신앙이란 자유로운 양심의 발현이라야 한다,


이것이 재침례교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신앙이 강제될 수 없다는 사상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사상입니다.


사실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1-2세기 후에,


계몽주의자들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개진된 사상입니다.


국가의 힘, 물리적 폭력, 위협 등으로 신앙은 만들어질 수도,


억압될 수도 없다는 것이 재침례교인들의 신앙이었으니


이들의 믿음이 얼마나 시대를 앞선 것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가톨릭교회와 심지어 개신교회마저도


국가의 힘, 폭력, 교회의 권위 등으로 신앙과 사상을 강제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결연히 맞선 것이 재침례교회이고,


그 표현이 바로 재침례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났던 일단의 청교도들은


미국에서 자유의 나라를 건설하기 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온전한 형태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컨대, 이들은 미국에 5-6개 종파들로 구성된 국교회를 세우려고 시도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시도는 실패하고 말기는 했습니다만,


자신들의 사상의 자유만이 아니라 타인의 사상의 자유까지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재침례를 시행하는 재침례교인들은 복음을 전할 때 강제적 수단을 활용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들은 늘 충실하게 복음을 설명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며, 그들의 반응을 인내로서 기다렸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양심 및 신앙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타인들의 양심 및 신앙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란, 신앙을 가질 자유 뿐만 아니라 가지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는 파격적인 사상,


이것이 재침례교인들의 자유관이며,


이러한 사상은 국가 및 교회의 권위로 시행되는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재침례를 준 그 결연한 선택으로부터 표출된다고 할 것입니다.


 


2) 참 신자의 표지:


 재침례는 참된 신자됨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중세 1,000년 동안 유아 세례는 보편화되었으며,


제도적으로 정착되었고, 신학적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당시 유럽 사회는 거의 대다수가


유아 세례를 받은 모태교인들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럽 사회와 가톨릭 교회는 도무지 그리스도인다운,


혹은 교회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재침례교인들이 봤을 때 이는 교회가 유아세례를 통해서


명목상의 신자를 양산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신자란 모름지기 참된 신자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이들도 참 신자와 위선자를 완전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한때 재침례교회는 치리와 권징을 통해서 참 신자와 위선자의 완전한 구분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란 참된 신자들을 의미한다고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참된 신자가 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요건은


올바르고 명료한 의식으로 복음을 듣고, 이해하며,


자발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유아세례는


참된 신자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의식이었던 것이죠.


 


재침례교인들에게 재침례는 성례전(sacrament)이 아닙니다.


재침례교인들은 성례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최소한 7가지를, 개신교회는 대충 2가지를 성례전으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재침례교인들은 성례전이라는 말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다시 침례를 준다고 했을 때, 성례전을 집전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침례의 의식이나, 혹은 침례수가, 혹은 의식을 집행하는 집례자가 


영혼을 구원하는 권능을 발휘한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수침자의 참된 신앙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침례와 주의 만찬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침례의식에서 중요한 것은 의식 자체가 아니라


수침자의 믿음, 곧 자발적 결단이었습니다.


따라서 물 속에 퐁당 빠뜨리는 침례나 아니면 반만 빠뜨리는 관수례나, 살수례, 세례 등도


그 자체로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신자가 되겠다고 결단했을 때,


이는 단순히 침례를 받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거나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역사적인 사실로 믿는다거나,


혹은 기독교라는 종교에 귀의하겠다는 의사 표현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지적인 동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수침자가 침례식 때 결단하는 내용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 죄사함 등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는 것을 포함해서,


기존의 모든 삶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겠노라는 결단을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창조(new creation) 때문에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중생은 새로운 창조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며,


바로 이러한 새창조가 산상설교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재침례라는 의식입니다.


때문에 재침례는 참 신자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이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3) 참 교회의 표지:


 재침례교인들이 유아세례를 반대한 것은,


그것이 명목상의 신자를 양산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명목상의 교회를 만들어 내기도 하기 때문에 그들이 유아세례를 반대했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 명목상의 신자가 가득하다면 그 교회는 명목상의 교회가 되고 말겠지요.


그리고 교회를 명목상의 교회로 만드는 중요한 고리가 바로 유아세례였던 것이지요.


 


따라서 이들이 재침례를 통해서 기대했던 것은,


먼저는 참된 신자들이 출현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 참된 신자들이 모이는 참된 교회가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침례교인들에게 있어서 침례의식은 구원론적인 의미 못지 않게 교회론적인 의미가 컸습니다.


즉 침례는 교회의 문이었던 것입니다.


최근 메노나이트 교회에서도 명목상의 신자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는데,


명목상의 신자, 명목상의 교회는 재침례를 시행하는 재침례교회라고 하더라도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주는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심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재침례교인들은 교회를 기본적으로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로 보았습니다.


물론 순수하게 신자들로만 모이는 교회란 지상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재침례교회는


교회를 순수하게 신자들만의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 초기에는 다소 엄격한 치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치리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결국 후대로 가면서 치리는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즉 지상의 교회가 순수하게 신자들만의 교회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하지만, 원칙상 교회는 순수한 신자들만의 모임이라야 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교회가 신자들만의 교회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교회는 가급적 참 신자들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교회는 밀과 가라지로 모인 곳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교회는 신자들로만 모이는 것이 맞는데,


그것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죠.


재침례는 교회가 순수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4)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재침례교인들은 교회가 세상에서 부름을 받고 세상을 빠져 나온 무리들이라는


신앙을 굳게 고수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 곧 ekklesia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불가피하게 세상 속에서 빛이요, 소금이며, 산 위의 동네라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대조사회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릅니다.


바로 이러한 교회와 세상과의 대조성의 표현이 재침례입니다.


 


왜 일까요?


당시 유아 세례는 종교적인 의식이면서 동시에 행정적 절차였습니다.


일종의 호적등록이었던 것이죠.


따라서 유아세례는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의식임과 동시에


조세나 징병을 필요로 하는 국가의 중요한 행정절차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유아세례의 거부가 그토록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 원인이 됩니다.


유아세례의 거부는 단순히 가톨릭 교회에 등록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행정 절차를 마비시키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국기 문란 행위요, 국가 교란행위며, 반국가 행위인 셈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국가나 시정부가 앞장서서 재침례교인들을 박해했던 것입니다.


 


재침례교회는 기본적으로 국가나 시정부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국가나 시정부를 통해서 이 땅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일에나 신앙적인 일에 국가나 시정부는


일절 관여할 수 없음을 확고하게 천명했습니다.


고로, 유아세례의 문제에 국가나 시정부가 나서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국가는 세상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믿었던 재침례교인들은,


종교개혁가들이 국가나 시정부, 혹은 귀족계급과 결탁해서 종교 개혁을 성취하려는 시도를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영적인 기관이며, 그리스도가 왕이신 나라인데,


어찌 감히 일개 국가가, 혹은 시의원이 감놔라 배놔라 참견한단 말인가?


그리고 어찌하여 교회가 국가의 칼의 도움을 받아 교회를 개혁하려고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 때문에 그들은 유아세례의 거부,


재침례의 시행은 국가와 교회의 결연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는 국가고, 세상은 세상이다!


이것이 재침례 안에 녹아들어 있는 확신이었습니다.


   


5) 만인사제직의 선언:


 쮜리히에서 쯔빙글리와 함께 성서를 공부했던 일단의 무리들이


쯔빙글리와의 신학 논쟁에서 패배하고 한 곳에 모였습니다.


사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못한 싸움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싸움에서 패배하고 실망에 빠진 이들은 펠릭스 만츠의 집에 모입니다.


이 날은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1525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교리 논쟁에서는 패배했지만


자신들의 신앙과 사상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비록 그들 모두가 유아세례를 받은 명목상의 신자들이었지만,


그러한 유아세례를 유지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 중 콘라드 그레벨이 '우리 다시 침례를 받자'고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그리고 그러한 재침례가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약간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사실 최초로 재침례를 베푼 콘라드 그레벨은 사제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가 복음전도를 했고, 또 목회하는 일을 하기는 했으나 정식 목사라고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청년 어거스틴처럼 방탕한 삶을 살다가 복음을 듣고,


성경을 연구하며 회심한 복음전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친구 블라우로크에게 재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과연 그 재침례가 효력이 있을까?


가톨릭 교회의 성례론에 따르면 이 재침례는 무효입니다.


왜냐하면 그레벨은 사도적 계승을 유효하게 받은 사제가 아니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베푸는 성례전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죠.


개신교회의 성례론에 따르면 이러한 재침례가 완전히 무효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목사가 아닌 평신도의 세례는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개신교회는 비록 형식적으로는 만인 사제직을 고수했지만,


실제로는 평신도의 설교, 침례나 성찬의 인도 등에 많은 제약을 두고 있지요.


때문에 그레벨의 최초의 재침례가 유효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재침례교회는 이때 있었던 재침례를 최초의 재침례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평신도인 그레벨이 다른 평신도에게 재침례를 베풀었고,


다시 블라우로크가 다른 사람들에게 재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날, 재침례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만일 이 날의 재침례가 효력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인치심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용감한 재침례 행위를 시행했던 스위스 형제단은


만인이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제사장이라는


굳은 확신에 기초해서 이러한 일을 벌였습니다.


   


6) 공동체의 기초:


사실 최근의 적지 않은 신학자들은 프로테스탄트가 겉으로는 만인사제설을 인정하면서도


다양한 이유와 빌미를 들어 만인사제설을 부인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이것은 일관성있는 태도도 아니며, 정직한 태도도 아닙니다.


재침례교회는 자신이 믿는 바,


곧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확신을 철저하게, 분명하게 선언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렇다고 재침례교회는 지도자나 목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지도자나 목사는 치리나 목양, 혹은 설교나 가르침을 은사로 받은 자들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공동체가 인정한 이상


교회 회중은 지도자의 치리를 받고, 목사의 목양을 받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나 목사는 순전히 은사를 지닌 한 사람(one)으로만 여겨지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은사를 지닌 다른 여러 사람들 가운데 그냥 한 사람인 것이지요.


결국 교회는 공동체라고 믿습니다.


 


최초의 재침례가 있었던 날, 스위스 형제단 멤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물론 콘라드 그레벨이 최초로 침례를 시행했지만, 곧 그는 다른 형제에 의해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형제단은 온전한 공동체의 한 가지 모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섬기며, 치리하는 공동체의 모습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재침례교회의 재침례는 공동체의 기초를 구성합니다.


 


교회는 결국 모두가 헌신해서 세우는 공동체입니다.


어느 개인이나 권위자가 공동체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의견을 제출합니다.


그리고 그 의견을 조율합니다.


그런 다음 의사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결정된 의사에 모두가 순복합니다.


대단히 단순한 이 절차는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재침례교회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입니다.


모두가 공동체의 한 멤버요, 지체며, 모두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헌신합니다.


이것이 재침례교인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1-01-15 09:16:54 KAF자료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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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용하다용해 2011.03.22 23:44
    여러번 읽었지만 잘 정리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내용이 한국 상황에서 어떻게 변질되지 않고 공동의 의견으로 그리고
    동의하는 유형으로 자리 잡을 지에 대한 고민이 되네요.
    기존에 존재했던 그리고 지금 존재하는 곳도 이 재침례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 의미에 동의하는
    공동체의 형태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생겨날 아나뱁티스트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들이
    교회론의 의미에서 철저하게 이 부분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혹은 이땅에 맞는 타협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모두의 의사가 반영되면서도 처음 뜻을 왜곡하지 않는 지혜들이 모여졌으면 합니다.
    재침례의 의미에 대한 교육과 인식이 공동체의 형태에 대한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 ?
    김영현 2011.03.22 23:44
    잘 읽었습니다.
    재침레교도들의 생활상에 대해 조금은 이해 할 수있는곳 입니다.

    우선 용어 정의(정리)가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침례와 세례는 엄연 다르니까요.
    초기 밥티스트 들이 행했던 것은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 였지 물을 뿌리는 스프링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아나 밥티스트라고 자칭 부르길 원한다면 침례로서 그뜻을 존중하고 세례는 배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침례나 세례가 구원을 가져다 주는것은 아니지만요.
    제도권과 흡수하여 타협을 원하시는 모양인데 초기 아나밥티스트들은 그렇지 않았음을 안다면 초기에 했던대로 해야 하지않을까요? 그 정신을 이어 받겠다면 말입니다.

    또 다른문제도 있습니다만 다음 기회로 넘기겠습니다.
    저 역시 애나뱁티즘입니다.^&^
  • ?
    신광은 2011.03.22 23:44
    김영현님, 감사합니다.
    용어 정리는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이 베풀었던 방식은 살수례도 아니고 침수례도 아니었습니다.
    1521년 1월 25일, 펠릭스 만츠의 집에서 조지 블라우록이 콘라드 그레벨에게 최초로 베풀었던 의식은 두 손에 물을 가득 떠서 머리에 붓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살수례에 가깝기는 하지만, 이는 사실 기존의 어떤 방식과도 다른 독특한 방식의 의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에 그들은 강에서 침수례를 베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필요에 따라서 방식을 바꾸었다는 겁니다.
    특정 의식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물침례보다는 그 이전의 영의 침례나, 혹은 공동체적 확증, 고난의 침례 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의식의방식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습니다.

    후에 영국과 미국의 침례교인들에 의해서 침수례를 고집하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실, 침례와 세례는 동일한 원어, baptism에서 나왔습니다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신학적 의미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분명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한 논의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지금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의 관용의 정신을 따라서 침례 / 세례를혼용하는 것이 보다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침례교 목사이며, 침례를 고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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